엄마가 밥을 1인분 덜 했다.
작가: 더지니어스
1. 엄마가 밥을 1인분 덜 한 건 토요일 저녁이었다. 그날 네 시쯤 가족 단톡방에 먼저 남겼다. 오늘 저녁에 집 간다고. [엄마] 준호야 오늘 오는거 맞지?? 엄마가 김치찜 해놀게 ㅎㅎ 눈온다던디 차조심하구 와라~~♡ 밥 먹고 올거면 미리 말하구!! [누나] 야 오는길에 편의점 얼음컵 좀 나가기 개귀찮음 [엄마] 주희 말 뽄새 봐라 동생한테 부탁을 저렇게 하니?? 아들~~ 보고싶어~~~♡ [아빠] 👍👍 회사에서 조금 늦게 나왔다. 눈은 오다가 말았고 도로는 질척했다. 본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갔을 때는 여덟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어라. 지하주차장 기둥 색이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는 B동 쪽이 초록색이었는데, 새로 칠했는지 회색 바탕에 노란 줄이 들어갔다. 본가에 오랜만에 가면 늘 그런 것들이 먼저 보이고는 했다. 바뀐 기둥 색, 낯선 택배함, 새로 붙은 분리수거 안내문 같은 것들. 현관 비밀번호는 그대로였다. 0310. 내 생일이었다. 엄마는 비밀번호 바꾸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말했다. - 야, 내가 그걸 어케 또 외우냐. 도둑놈도 네 생일까지는 모르겄지. 벌써부터 웃음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구수한 사투리를 육성으로 들은지도 거의 두 달 가까이 되었으니. 문을 열자마자 김치찜 냄새가 났다. 등뼈 넣고 오래 끓인 냄새였다. 집 안은 훈훈했고, 현관 앞에는 아빠 등산화와 엄마 털신, 누나 운동화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내 회색 삼선 슬리퍼가 늘 있던 신발장 아래칸에는 돌돌 말린 우산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부엌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 왔어? 아이고, 춥겄다. 손 씻어라. 밥 다 됐다. 엄마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앞치마에는 귤 껍질이 하나 붙어 있었다. - 엄마, 나 왔어. - 아이고, 얼굴 좀 보자. 살 빠졌네. 회사서 밥은 먹고 다니는겨? 엄마는 내 팔을 한번 만져 보고는 바로 찌개 냄비 쪽으로 돌아섰다. - 손 씻고 와. 수건은 화장실에 있구. 주희야, 네 동생 왔다. 거실에서 누나가 대답했다. - 알아. 아까 엘베 소리 들었어. 야, 얼음컵은? - 여기. - 오, 웬일로 쓸모있네. 누나는 소파에 길게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잠옷 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손에는 리모컨이 들려 있었다. 그런 주제에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인상부터 썼다. 이 자식이? - 너 왜 이렇게 피곤하게 생겼냐. 회사에서 뭐 굴러다님? - 퇴폐미야, 퇴폐미. - 헛소리할 기력은 있네. 곧이어 아빠가 안방에서 나왔다. 겨울 옷으로 새로 장만한 건지, 회색 니트 조끼를 입고 있었다. - 왔냐. - 응. 아빠. - 길 미끄럽지는 않았어? - 괜찮았어. - 그래. 겨울엔 차간거리 넉넉히 둬야 돼. 아무리 급해도 브레이크 한 번 밟을 거 두 번 밟고. 알지? 아빠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손바닥이 따뜻했다. 식탁에는 밥 세 공기가 놓여 있었다. 엄마 밥, 아빠 밥, 누나 밥. 밥공기 옆에 수저도 세 벌이었다. 김치찜 냄비는 가운데 놓여 있었고, 계란말이, 멸치볶음, 무생채, 오이무침이 빙 둘러 있었다. 물컵도 세 개였다. 내가 쓰던 파란 테두리 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좀 서운한데. - 엄마, 내 밥은? 엄마가 냄비 뚜껑을 들다가 돌아봤다. - 응? - 내 밥. - 너 오늘 먹고 가? 엄마는 정말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미안해하기도 전의 얼굴. 상황을 아직 받아 적지 못한 사람의 얼굴. - 먹으러 온 건데...? - 아이고, 그랬어? 야야, 말을 하지 그랬어! 누나가 바로 끼어들었다. - 했잖아~ 단톡에 오늘 저녁 간다고. - 간다는 거랑 먹는다는 거랑은 다르지. 요즘 애들은 집에 와도 밖에서 다 먹고 오잖여. 엄마는 웃으면서 밥솥으로 갔다. 내가 중학교 때 야자 끝나고 와서 라면 끓여 달라고 하면, 밥은 안 먹고 맨날 밀가루만 먹냐고 하면서도 물을 올리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하지만 정작 밥솥 안에는 밥이 애매하게 남아 있었다. 한 공기라고 하기에는 적고, 반 공기보다는 많았다. - 밥이 쪼매 모자라네. 기다려 봐, 햇반 하나 돌릴게. 그러자 아빠가 자기 밥공기를 내 쪽으로 밀었다. - 내 거 나눠 먹자. 나는 저녁에 많이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 - 아니야, 햇반 먹으면 돼. - 괜찮아. 아빠 많이 안 먹는다. 누나는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하나 집더니 내 쪽으로 가져오려다가 내 앞에는 접시가 없는 것을 본 것인지 그대로 멈췄다. 누나는 계란말이를 지 입에 쏙 밀어넣더니 웃었다. - 야, 앞접시도 없어? 너 오늘 진짜 손님이냐? - 그러게. - 엄마, 얘 접시 줘야지. - 아이고, 정신머리 봐라. 준호야, 찬장 위칸에 접시 하나 꺼내 써. 엉거주춤 일어나 찬장을 열어 흰 접시 하나를 꺼냈다. 그릇은 한 번도 사용한 적 없어 보이는 새것이었다. 원래 쓰던 그릇과는 달랐다. 내친 김에 밥공기도 하나 더 꺼냈다. 예전에는 내 밥공기가 따로 있었다. 바닥에 작은 흠이 있어서 누가 봐도 내 것인 밥공기. 그것 역시 보이지 않았다. 밥은 결국 아빠가 조금 덜어 줬고, 햇반 하나를 더 돌렸다. 엄마는 김치찜을 내 그릇에 크게 덜어 주면서 말했다. - 많이 먹어라. 너 좋아하는 등뼈로 했어. 살 발라 먹기 귀찮다고 하지 말고. - 나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 했어. 너 어릴 때부터 그랬어. 뼈 있는 거 귀찮다고. 주희는 닭발도 잘 뜯어 먹는데 너는 영 투정은, 투정은. 누나는 입에 밥을 문 채 말했다. - 얘는 생선도 누가 발라줘야 먹었어. 걍 공주 그 자체임. - 누나가 발라준 적도 없으면서. - 왜 없어. 너 초딩 때 고등어 가시 내가 얼마나 발라줬는데. 근데 넌 기억도 못 하지? 으휴, 배은망덕한 놈. 아빠가 조용히 웃었다. - 준호 어릴 때는 손이 느렸어. 밥 한 숟갈 뜨는 것도 한참 걸렸지. - 지금도 느려. 회사에서는 안 혼나냐? - 누나나 잘해. 엄마는 내 그릇에 김치를 더 얹었고, 아빠는 회사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누나는 내 코트를 보더니 아직도 그거 입냐고 했다. 셋 다 나를 봤고, 내 말을 들었고, 내 농담에 웃었다. ...그런데도, 식탁 위에는 처음부터 내 자리가 없었다. 나는 식탁 모서리 쪽에 애매하게 앉아 있었다. 원래 내 자리는 벽 쪽이었다. 벽에 기대듯 앉아서 텔레비전을 비스듬히 보는 자리. 그 자리에는 누나의 노트북과 충전기가 놓여 있었다. 누나는 요즘 재택근무를 거기서 한다고 했다. - 으음, 내 자리 없어졌네. 누나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너 집에 잘 안 오잖아. 자리도 유통기한 있는 거 몰라? - 유통기한이 어디 있어? - 있지. 냉장고에도 있고 가족한테도 있고. 누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가 누나 등짝을 살짝 때렸다. - 말을 해도 꼭 얄밉게 혀. 네 동생 서운하게. - 뭘 서운해. 얘는 그런 거 신경도 안 쓸걸? - 신경 쓰거든. - 역시 공주님. 아빠가 말했다. - 자리는 또 만들면 되지. 식탁이 좁으면 보조의자 펴면 되고. 아빠는 늘 그런 식이었다. 문제를 작게 만들지도, 크게 만들지도 않았다. 자리는 또 만들면 된다는 말도 나를 생각해서 한 것이겠지. 감사하지만, 어쩐지 와닿지는 않았다. 밥을 다 먹고 엄마는 남은 김치찜을 반찬통에 담았다. 반찬통은 세 개였다. 하나는 엄마와 아빠가 먹을 것, 하나는 누나가 가져갈 것, 하나는 누나 회사 점심용이라고 했다. 나는 싱크대 옆에 서 있다가 말했다. - 엄마, 나도 한 통만 싸줘. 엄마가 손을 멈췄다. - 잉? 너도? - 응. 나 김치찜 좋아하잖아. - 아이고, 그렇지. 근디 남은 반찬통이 지금 없네. - 저기 많은데? - 그건 다 쓰는 거고. 큰 거는 주희 줄 거고, 작은 거는 아빠 약 넣어둔 거고. 엄마는 찬장을 열었다 닫았다. 뚜껑만 없는 것, 김치 냄새가 밴 것, 금 간 것, 새것. 여분의 반찬통은 정말 많았다. 하지만 엄마는 신경을 쓰는 기색도 없이, 한참 뒤적이다가 빈 요구르트 통 하나를 꺼냈다. - 이거 씻어서 담아줄까? 많이는 못 담아. 가만히 지켜보던 누나가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 ㅇ-야, 그냥 내 거에서 덜어가! 나 어차피 다 못 먹어. - 아니야. 됐어. - 왜 또 삐지고 그러냐? - 안 삐졌거든. - 삐졌네. 엄마, 얘 삐졌어! 엄마가 웃었다. - 우리 준호는 삐져도 티가 안 나. 속으로만 쌓아두지. 그래서 아주 그냥 더 무서워. 엄마는 내가 삐지면 말수가 줄어드는 것도, 괜찮다고 하면 안 괜찮은 것도, 피곤하면 오른쪽 눈을 자꾸 비비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전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 밥은 하지 않았다. 대체 왜? 2. 그날 밤 자고 가기로 했다. 눈이 다시 온다고 했고, 아빠가 밤길은 괜히 운전하지 말라고 했다. 예전 내 방으로 들어가려다 문 앞에서 멈췄다. 방 안에는 누나의 재택근무용 책상이 있었다. 모니터 두 대, 키보드, 작은 스탠드, 택배 상자, 실내 자전거. 침대는 벽 쪽으로 밀려 있었고, 그 위에는 접은 빨래가 쌓여 있었다. 누나가 뒤에서 말했다. - 아 맞다. 너 오늘 자고 가? - 응. - 아, 미리 말하지. 나 여기 내일 오전에 회의 있는데. - 거실에서 자면 돼. - 아니야, 내가 치울게. 누나는 귀찮다는 얼굴로 빨래를 걷기 시작했다. 양말을 한 줌 들고 나가면서 투덜거렸다. - 아 진짜. 너는 올 거면 하루 전에는 말해. 갑자기 오면 집이 너한테 안 맞춰져 있잖아. 집이 나한테 안 맞춰져 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도 따로 살고, 본가에는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했다. 독립한 자식 방이 창고처럼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불편했다. 무엇이? 나도 모르겠다. 엄마가 안방에서 이불을 들고 나왔다. 두꺼운 겨울 이불이었다. 분홍색 꽃무늬. 내가 쓰던 파란 줄무늬 이불은 보이지 않았다. - 이거 덮어. 이불장 안쪽에 있던 거라 냄새 좀 날 수 있다. 그래도 따뜻혀. - 내 이불은? - 네 이불? - 파란 거 있잖아. 엄마는 잠깐 생각하다가 손뼉을 쳤다. - 아, 그거. 그거 주희가 여름에 친구 놀러 왔을 때 깔아줬다가 뭐 묻어가지고 버렸을겨. 누나가 거실에서 소리쳤다. - 내가 안 버렸거든?! 엄마가 버렸잖아. 솜 뭉쳤다고. - 그랬나? 아무튼 오래돼서 버렸어. 이불은 또 사면 되지. 아빠가 옆에서 말했다. - 준호야, 불편하면 안방 침대에서 자. 아빠는 거실에서 자도 돼. - 아니야, 괜찮아. - 그래도 허리 안 좋은데 바닥에서 자면 다음 날 힘들어. - 진짜 괜찮아. 아빠는 내 말을 믿지 않는 얼굴로 서 있다가 작은 전기장판을 가져다줬다. 리모컨을 직접 2단에 맞춰 놓고 나갔다. - 이거 틀고 자라. 너무 세게 틀면 목 마르니까 2단으로 해.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거실에서는 아빠가 뉴스 채널을 틀어 놓은 소리가 낮게 들렸고, 부엌에서는 엄마가 설거지하는 소리가 났다. 누나는 방에서 회의 자료를 만든다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온통 내 가족의 소리들이었다. 딱 하나, 나를 제외하고. 내 컵이 물받이에 없고, 내 칫솔이 컵에 없고, 내 수건이 걸려 있지 않고, 내 이불이 없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해서 치운 게 아니었다. 필요 없어져서 조금씩 다른 물건이 그 자리를 채운 것뿐이었다. 조금은 서글퍼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3.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된장국을 끓였다. 구수한 냄새가 났다. 눈을 비비며 부엌으로 갔다. 식탁에는 또 밥 세 공기가 있었다. 수저도 세 벌. 엄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말했다. - 일어났어? 잘 잤냐? 허리 안 아파? - 괜찮아. - 씻고 와. 국 식기 전에. - 엄마, 내 밥은? 엄마가 국자로 된장국을 뜨다가 멈췄다. - 어? 나는 일부러 웃었다. - 나 아침 먹고 갈거야. - 아이고, 그래? 나는 네가 늦잠 잘 줄 알았지. 너 주말엔 아침 안 먹잖여. - 집에 오면 먹잖아. - 그랬나? 엄마는 밥솥을 열었다. 밥솥 바닥에 눌은 밥만 조금 붙어 있었다. - 어쩐다. 주희 도시락 싸느라 밥을 다 퍼부렀네. 누나가 머리를 묶으며 나왔다. - 엄마, 이게 내 탓이야? - 네 도시락 쌌잖여. - 엄마가 싸준 거잖아. - 아이고, 말대꾸는. 아빠가 자기 밥공기를 또 밀었다. - 준호야, 아빠 거 먹어. - 아빠 어제도 그랬잖아. - 아빠는 국만 먹어도 돼. 엄마가 말했다. - 아냐, 햇반 돌리면 되지. 준호야, 냉장고 위에 햇반 있나 봐라. 냉장고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없는데...? - 없어? 분명 사다 놨는디. 누나가 말했다. - 하나 남은 거 엄마 어제 나 야근할 때 먹으라고 줬잖아. - 아, 그랬지. 그랬네. 엄마는 이마를 톡 쳤다. - 그럼 국수 삶아줄까? 잔치국수 금방 혀. - 아니야. 괜찮아. - 왜 괜찮어. 먹고 가야지. 아침 굶으면 속 버려. 괜히 싫었다. 엄마가 국수를 삶아 주면 이 일은 별일 아닌 게 될 것 같았다. 그냥 밥이 모자랐고, 엄마가 국수를 해 줬고, 나는 먹고 갔다. 지금의 이 이상한 상황이, 단순히 그렇게 정리될 것 같아서 싫었다. 나는 된장국에 밥 조금을 말아 먹었다. 아빠 밥에서 덜어낸 밥이었다. 엄마는 내 국그릇에 두부를 더 넣어 줬다. - 두부 많이 먹어. 너 두부 좋아하잖여. - 나 두부 별로 안 좋아하는데. - 아니야. 좋아했어. - 누나가 좋아했지. 엄마는 잠깐 누나를 봤다. - 그랬나? 누나가 숟가락을 든 채 말했다. - 나 두부 싫어해. 식감 이상해서. - 아이고, 둘이 어릴 때 하도 바뀌어가지고 헷갈린다. 엄마는 웃었다. 누나도 웃었다. 아빠도 웃었다. 나도 웃었다. 4. 그 뒤로 평소보다 더 자주 본가에 들르기 시작했다. 확인하고 싶었다. 엄마는 언제나 반가워했다. - 우리 막내 왔네. - 춥제. - 살이 왜 이리 빠졌냐. - 회사서 못살게 구는 사람 있으면 엄마한테 말혀. 누나는 볼 때마다 내 옷을 지적했고, 내 머리를 보고 미용실 좀 가라고 했다. 아빠는 매번 주차장까지 내려와 내 차 타이어를 한 바퀴 둘러봤다. 밥은 계속 한 사람 덜했다. 어느 날은 삼겹살이었다. 고기는 세 줄씩 네 번 구웠다. 엄마와 아빠, 누나가 먹기에는 조금 넉넉하고, 넷이 먹기에는 조금 모자란 양이었다. 내가 젓가락을 뻗으면 누나는 자기 앞의 고기를 내 쪽으로 밀어 줬다. - 먹어. 너 고기 없으면 세상 무너지는 애잖아. - 누나는? - 난 다이어트. - 거짓말. - 들켰네. 그래도 먹어. 너 얼굴 꼴 보니까 고기좀 먹어야 돼. 엄마는 상추를 씻어 와서 내 앞에 놓았다. - 쌈 싸 먹어. 그냥 고기만 먹지 말고. 속 버려. 아빠는 기름 튄다며 내 소매를 걷어 올려 줬다. 다들 나를 챙겼다. 고기는 처음부터 세 사람분이었다. 또 어느 날은 갈비탕이었다. 엄마는 전날부터 끓였다고 했다. 큰 냄비에 갈비가 세 대 들어 있었다. 엄마는 아빠 그릇에 하나, 누나 그릇에 하나, 자기 그릇에 하나를 넣었다가 내 얼굴을 보고 자기 것을 내 그릇에 옮겼다. - 엄마는 국물만 먹어도 돼. 고기 씹으면 이 사이에 껴. - 그럼 왜 세 개만 넣었어? 엄마가 국자를 든 채 나를 봤다. - 응? - 갈비. 세 개만 있잖아. - 아이고, 네가 오늘 먹을 줄 몰랐지. - 나 어제 말했잖아. - 말했나? 누나가 휴대폰을 보며 말했다. - 말했어. 단톡에 있음. - 그럼 내가 또 정신이 없었나 보네. 요즘 깜빡깜빡한다. 엄마는 바로 김치를 꺼냈고, 누나는 회사에서 들은 이상한 얘기를 시작했다. 아빠는 갈비탕 국물에 밥을 말았다. 아무도 그 일을 붙잡지 않았다. 나만 그릇 속 갈비를 오래 보고 있었다. 어느 날은 아예 일부러 장을 봐 갔다. 돼지고기 두 근, 두부 두 모, 콩나물, 계란, 귤 한 박스, 햇반 열두 개. 엄마는 현관에서 장바구니를 받아 들고 좋아했다. - 아이고,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돈 아깝게. - 밥 모자랄까 봐. - 얘 봐라. 엄마가 밥 굶기디? - .......엄마. - 농담이야. 야, 귤은 잘 샀네. 이번엔 좀 달다. 엄마는 고기를 보더니 바로 김치찌개를 끓이자고 했다. 냄비가 넘칠 만큼 넉넉하게 끓였다. 밥도 내가 가져온 햇반이 있었고, 쌀도 새로 씻어 안쳤다.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 아유, 우리 아들이 쌀도 씻네. 장가가도 되겄다. 그날 식탁에는 반찬이 많았다. 김치찌개, 계란말이, 콩나물무침, 김, 멸치볶음, 귤. 그런데도 수저는 여전히 세 벌이었다. 밥그릇도 세 개였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내 쪽에 젓가락 하나만 따로 놓았다. - 나, 숟가락은? - 어머, 숟가락 안 놨네. 엄마는 서랍을 열었다. 숟가락 통 안에는 숟가락이 많았다. 엄마는 그중 하나를 꺼내려다가 멈췄다. 손끝으로 숟가락들을 조금 뒤적이더니, 싱크대 위에 놓여 있던 어린이용 숟가락을 집었다. 예전에 조카가 왔을 때 쓰던 작은 숟가락이었다. - 이거라도 쓸래? 깨끗해. - 엄마. - 응? - 왜 자꾸 내 것만 없어? 부엌이 조용해졌다. 누나는 귤을 까다 멈췄다. 아빠는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다. 엄마는 어린이 숟가락을 들고 나를 바라봤다. - 뭐가 없어. - 밥. 수저. 컵. 이불. 내 자리. 계속 내 것만 없잖아. 엄마는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누나는 귤껍질을 접었다. 아빠는 천천히 말했다. - 준호야. 그 목소리가 너무 조심스러워서 더 화가 났다. - 아빠도 느꼈잖아. 매번 아빠 밥 나눠 주잖아! 아빠는 한참 있다가 말했다. - 아빠는 네가 많이 먹는 게 보기 좋아서 그런 거지. - 그게 아니잖아...! 누나가 말했다. - 야, 뭐 화까지 내고 그러냐. - 누나는 내가 이상해 보여? -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요즘 네가 좀 예민해 보여서 그렇지. - 내가?! - 응. 집에 오면 계속 뭐가 없어졌다고 하는데, 막상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니잖아. 밥 없으면 햇반 돌리면 되고, 수저 없으면 꺼내면 되고, 방은 치우면 되고.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냐? - 그럼 왜 처음부터 없는 건데. 내가 뭐 일 년에 한 번씩 오는 것도 아니잖아! 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준호야, 엄마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여. 엄마가 왜 네 밥을 안 해. 네가 어릴 때부터 먹는 거 하나는 내가 안 굶겼다. 너 고3 때 밤마다 볶음밥 해준 것도 엄마고, 군대 휴가 나왔을 때 갈비찜 해준 것도 엄마고, 너 첫 회사 붙었을 때 잡채 한 솥 한 것도 엄마여. 내가 그걸 어떻게 잊어. 엄마 눈이 빨개졌다. 동시에 나는 아차, 싶었다. 중요한 것을 잊고 있던 기분. 엄마는 나를 사랑했다. 엄마는 아직도 내 생일을 비밀번호로 쓰고, 내가 좋아하는 김치찜을 하고, 내 팔을 만지며 살 빠졌다고 걱정했다. 그런데 오직 하나. 내 밥만 하지 않았다. 아빠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 준호야, 가족끼리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있어. 서로 서운한 거 생기고. 아빠도 네 마음 다 이해한다. 근데 엄마가 일부러 그랬겠니.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누나는 내 앞에 자기 숟가락을 놓았다. - 내 거 써. 난 젓가락으로 먹을게. - 됐어. - 됐다고 하지 말고 그냥 써.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지 말고. 말투는 틱틱댔지만, 누나의 손이 조금 떨렸다. 누나는 내 눈을 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숟가락을 받지 않았다. 그날은 밥을 먹지 않고 나왔다. 엄마는 현관까지 따라 나왔다. - 준호야, 엄마가 미안혀. 엄마가 진짜 정신이 없어서 그랬나 봐. 다음엔 밥 많이 해놓을게. 김치찜도 해놓고, 네 반찬통도 따로 챙겨 놓고. 응? 나는 신발을 신었다. 엄마는 내 코트 깃을 만지며 말했다. - 이거 여며. 목 시려. 너 감기 걸리면 오래 가잖여. 그 말 때문에 더 화가 났다. 엄마는 내가 감기 걸리면 오래 가는 걸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축농증 수술한 것도 알고, 술 마시면 다음 날 오른쪽 관자놀이가 아픈 것도 알고, 운전할 때 커피를 꼭 두 잔 사는 것도 알았다. 그렇게 모든 걸 다 아는데, 내 숟가락 하나가 빠졌다고...? 모르겠다. 내가 집착이 심한 건지, 너무 예민한 건지, 쫌생이 같은 건지. 혹은, 정말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이상해진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구분이 가지 않았고, 구분하기가 두려웠다. 5. 다음 주에 다시 본가에 갔다.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갔다. 주말 오후 세 시, 가족들이 낮잠 자거나 텔레비전을 볼 시간이었다. 현관을 열자 집 안은 조용했다.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엌 식탁 위에는 장 본 것들이 놓여 있었다. 비닐봉지를 하나씩 열어 봤다.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 계란 여섯 알. 삼치 세 토막. 사과 세 개. 컵라면 세 개. 요구르트 세 줄. 우유 하나. 어묵탕용 꼬치 여섯 개. 냉장고를 열었다. 엄마가 반찬통마다 종이테이프를 붙여 두었다. '아빠 점심' '주희 야근간식' '엄마 아침' '주희아빠 약 먹고 먹기' '주희 가져갈거' '남은거' 내 이름은 없었다. 대신 냉장고 문 안쪽 제일 아래 칸에 작은 반찬통 하나가 있었다. 투명한 통이었다. 멸치볶음이 조금 들어 있었다. 종이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늦게 온 사람' 딱 손바닥만한 반찬통이었다. 한 끼라고 하기도 애매한 양. 밥 없이 먹기에는 짜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정도. 나는 한참 그걸 들고 서 있었다. 방에서 누나가 나왔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 어? 너 왔어? - 응. - 말도 없이 왔냐. 도둑인 줄 알았네. 누나는 하품을 하며 부엌으로 왔다. 그러다가 일순간, 내가 들고 있는 반찬통을 보고 얼굴이 굳었다. - 그거 왜 꺼냈어? - 이거 뭐야? - 몰라. 엄마가 해놓은 거겠지. - '늦게 온 사람'이 누구야? 누나는 내 손에서 반찬통을 빼앗으려다가 멈췄다. - 그냥 둬. - 왜? - 그냥. 엄마가 붙여 놓은 건데 니가 왜 만지는데. - 내 거야? 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이 덜 깬 얼굴이 순식간에 피곤해졌다. - 너 자꾸 그런 식으로 굴면 엄마도 힘들어. - 내가 뭘? 그냥 물어본 거잖아! - 엄마 요즘 네 눈치 많이 봐. 밥 할 때도 계속 세다가 다시 세고, 수저 놓다가 멈추고. 네가 서운한 건 알겠는데, 엄마한테 너무 몰아붙이지 마. - 이게 내가 이상한 거야? 누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 이상한 건 아니야. - 그럼? - 그냥 너도 좀 적응해. - 뭘? 누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때 안방 문이 열리고 아빠가 나왔다. 아빠는 우리 둘 사이를 보고 바로 멈췄다. 큰소리 나기 전에 중간에 끼어드는 사람. 아빠는 늘 그랬다. - 무슨 일이야. 나는 반찬통을 들어 보였다. - 아빠, 이거 누구 거야? 아빠는 글자를 보았다. '늦게 온 사람'.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그 뒤에는 다시 부드러운 표정이 돌아왔다. - 엄마가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 둔 거겠지. - 아빠. - 준호야. 아빠는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나무람보다 부탁이 많았다. - 집이란 게 그래.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있고, 늦게 오는 사람이 있어. 늦게 오는 사람 몫도 챙겨야 하고, 먼저 와 있는 사람 마음도 챙겨야 하고. -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나가 조용히 말했다. - 그만해. 그날 엄마는 시장에 갔다가 늦게 돌아왔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밝은 목소리가 들어왔다. - 아이고, 우리 준호 또 왔네? 말도 없이 오면 엄마가 뭐 해놓은 게 없잖여. 그래도 잘 왔다. 떡 사 왔어. 꿀떡 좋아하잖어. 엄마는 검은 비닐봉지에서 떡을 꺼냈다. 꿀떡은 세 팩이었다. 하나를 아빠에게 주고, 하나를 누나에게 주고, 하나를 식탁 가운데 놓았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고 웃었다. - 너는 가운데 거 같이 먹어. 많이 먹으면 체한다. 나는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한동안 본가에 가지 않았다. 엄마는 가끔 전화를 했다. - 밥은 먹었냐. - 날 추우니까 내복 입어라. - 너 요즘 목소리가 왜 그려. 감기여? - 엄마가 김치 좀 보낼까? - 아니, 안 바쁘면 한번 와. 아빠가 너 보고 싶대. 이 말들이 다 진심처럼 들렸기에, 더 힘들었다. 6. 결국 설 전날에 다시 본가에 갔다. 웬만하면 가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아빠가 직접 전화했다. - 준호야. 내일은 와라. 오래 안 있어도 돼. 얼굴만 보고 가도 돼. 아빠가 그렇게 말하면 대놓고 거절할 수가 없었다. 늘 그런 식이지. 본가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준비가 끝나 있었다. 갈비찜 냄새가 났고, 전 냄새도 났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 아이고, 우리 아들 왔네.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 일단 들어와. 손 씻고 와. 엄마가 갈비찜 해놨어. 네가 좋아하는 거. 식탁에는 접시가 많았다. 전, 나물, 갈비찜, 잡채, 동치미. 명절 음식이라 그런지 양도 많았다. 밥공기는 네 개였다. 수저도 네 벌. 물컵도 네 개. 내 컵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네 개였다. 누나가 나를 보고 픽 웃었다. - 뭐야. 밥공기 검사하냐? - 아니. - 맞네. 검사했네. 누나는 내 앞에 전 접시를 밀어 주었다. - 먹어. 엄마가 너 온다고 새벽부터 했어. 안 먹으면 진짜 불효다. 엄마가 부엌에서 말했다. - 새벽은 무슨. 여섯 시에 일어났구만. - 그게 새벽이지. 아빠는 술잔을 꺼냈다. - 오늘은 한잔할래? - 운전해야 돼. - 자고 가면 되지. 나는 잠깐 멈췄다. 자고 가면 또 이불이 없을까 봐. 내 방이 없을까 봐. 하지만 식탁에는 네 사람이 앉을 자리가 있었다. 엄마는 내 밥을 했다. 누나는 내 앞에 전을 밀어 줬고, 아빠는 내 잔을 꺼냈다. 나는 그날 오랜만에 편하게 먹었다. 엄마는 갈비를 내 그릇에 두 개나 넣어 줬다. - 살 많은 걸로 먹어. 뼈만 있는 거 말고. - 엄마, 나 뼈 발라 먹을 줄 알아. - 그래도 엄마 눈엔 애여. 누나는 말했다. - 반오십 넘은 애. 아빠는 말했다. - 부모한테는 다 애지. 밥을 먹고 나서 엄마는 남은 음식을 반찬통에 담았다. 이번에는 네 개였다. 엄마는 하나하나 종이테이프를 붙였다. '아빠 점심' '주희 가져갈거' '준호' '늦게 온 사람' 세 번째 통에 내 이름이 붙어 있었다. '준호'. 엄마 글씨였다. 삐뚤빼뚤하고, ㅎ의 꼭지가 늘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글씨. - 엄마. - 응? - 이거 나 주는 거야? - 그럼. 네 거지. 갈비찜 많이 담았어. 데워 먹을 때 물 조금 넣고. 안 그러면 짜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네 번째 통을 집었다. 작은 밀폐용기였다. 안에는 잡채 조금과 전 두 장, 갈비찜 국물에 젖은 무 한 조각이 들어 있었다. 엄마는 그 통을 들고 현관으로 갔다. - 그건 뭐야? - 이거? - 응. - 늦게 온 사람 것이지. 엄마는 너무 쉽게 대답했다. 마치 아빠 점심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누나는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만 봤다. 아빠는 술잔을 닦았다. 엄마는 현관문을 열고, 문밖에 그 통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추우니까 금방 식을 텐데도, 뚜껑을 한 번 더 눌러 닫았다. - 늦으면 밥이 다 식어.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나는 따라 나가려 했다. 엄마가 뒤돌아봤다. 눈가에는 주름이 잡혀 있었고, 앞치마에는 전 부치다가 묻은 밀가루가 하얗게 남아 있었다. - 왜 나와. 추운데. - 엄마, 그거 누구 건데? 엄마가 웃었다. - 아이고, 너 자꾸 왜 그려. 그건 네 거 아니여. - 그럼 누구 건데?!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코트 깃을 여며 주었다. 손끝에 참기름 냄새가 났다. - 너는 이제 집에 있잖어. 그 말 뒤에 복도 센서등이 꺼졌다. 현관 밖은 어두워졌고, 문 안쪽은 따뜻했다. 식탁에서는 누나가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 야, 갈비 식는다. 들어와. 아빠도 말했다. - 준호야, 문 닫아라. 찬바람 들어온다. 엄마는 내 등을 가볍게 밀었다. - 들어가. 밥 먹다 말고 어딜 나가. 나는 문밖의 작은 반찬통을 한 번 더 보았다. 어둠 속에서 뚜껑 위 종이테이프만 희미하게 보였다. '늦게 온 사람' 문 안쪽에서 엄마가 말했다. - 우리 아들, 얼른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