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 주무관님께.

작가: marketvalue

후임 주무관님께. 아마 여기로 발령 났다는 소식 듣고 검색부터 해보셨을 거예요. 시골이기는 해도 조용하고 공기 좋아서 일하기 좋아 보이죠. 다만, 본청에서 일하시던 분이라면 처음 몇 달은 좀 답답할 수도 있어요. 여기도 당연히 주민센터고, 규정이 없는 곳은 아닌데요, 규정이 항상 제일 위에 있지는 않아요. 무슨 말이냐면, 법대로 처리하면 틀린 건 아닌데, 그게 꼭 옳은 일이 되는 건 아니라는 분위기가 있어요. 처음엔 저도 원칙대로 다 처리했어요. 기한 칼같이 지키고, 서류 보완 정확히 받고, 형평성 맞추려고 이전 기록 다 확인하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여기 주민들은 거의 다 서로 아는 사이에요. 누가 어디에 땅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누구랑 친척인지, 누가 예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까지요. 그리고 그걸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민원을 넣어요. 처음엔 그게 별거 아닌 줄 알았어요. 규정대로만 하면 일이 안 굴러가는 날이 있어요. 그렇다고 규정을 안 지키면 더 곤란해지는 날도 있고요. 어디까지가 배려고 어디부터가 선 넘는 건지, 명확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원래 공무원들 사이에 이런 인수인계 같은 건 없다는 건 이미 잘 알고 계실 거에요. 그래도 제가 여기서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자 이렇게 몇자 끄적여놓고 갑니다. 저라고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알지는 못해요. 2년 정도밖에 안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여기 적혀 있는 것들만 잘 지키면, 심각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에요. 아마도. 같이 일하게 될 분들 이야기도 조금은 해두는 게 좋겠네요. 사람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먼저 최 팀장님. 6급이시고, 이 근처에서 근무하신 지 엄청 오래되셨어요. 이 동네 사정은 웬만한 주민보다 더 잘 아십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결국 팀장님한테 연락이 가고, 결정도 대부분 팀장님이 정리해 주세요. 다만, 주민센터 안에 계시는 시간이 많지는 않아요. 군청에서 부른다고 나가시고, 마을에서 부르면 나가시고, 지역 농민들간 간담회니 협의니 뭐니 해서 자리를 비우는 날이 더 많습니다. 정말 급한 일은 팀장님께 말씀드리면 어떻게든 길이 보이긴 합니다. …대부분은요. 팀장님 선에서도 정리가 안 되는 일이 가끔 있어요. 그럴 땐 저희가 알아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게 조금 곤란하긴 합니다. 그리고 7급 윤 주무관님. 윤 주무관님도 이곳에 꽤 오래 근무하신 분인 걸로 알아요. 일도 꽤 잘 하시는 편이세요. 다만, 불필요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 분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잘 구분하십니다. 아마 주무관님한테도 처음엔 엄청 까칠할 거예요. 맨날 모니터만 보고 한숨 쉬고 짜증 낼 텐데, 너무 상처받지 마세요. 38살 먹도록 아직도 시집을 못가서 좀 예민하실 뿐이에요. 그리고 가끔 이상 행동을 보이실 때가 있는데,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시지는 않아요. 그리고 현성이. 이장님 아들입니다. 공식 직원은 아닌데, 주민센터에 거의 매일 나와 있어요. 주민센터에 일손이 부족해서 자주 와서 일을 도와주는데, 웬만한 직원들보다 훨씬 아는 게 많아요. 원래 서울로 대학을 가네 마네 했었는데, 일이 잘 안 풀려서 그냥 이장님 따라 틈틈이 농사 일을 배우러 다니는 것 같아요. 컴퓨터도 잘 다루고, 어르신들 민원서류 작성도 대신 도와주고, 일손 부족할 때는 잡일도 도와줍니다. 성격이 참 착해요. 주민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 동네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요. 누가 언제 무슨 요구를 할지, 누가 지금 무슨 일로 불만이 있는지까지 알고 있습니다. 팀장님이 자리를 비우시고, 윤 주무관님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현성이에게 도움을 청하실 일이 많을 테니, 잘 대해주세요. 이제 본격적인 수칙을 알려드릴게요. 기본적으로 초본, 등본 떼주고 농지 관련 서류 떼주고 보조금 지급 서류 받고 뭐 이런 것들은 다른 곳이랑 비슷할 거에요. 그냥 여기만의 특수한 규칙이다 생각하시고 읽어주세요. 1. 점심시간 정문 관리 12시부터 1시 사이엔 정문을 완전히 열어두지 말고, 반쯤만 열어두세요. 잠그라는 게 아니라, '반만 열어두라'는 겁니다. 아무리 점심시간이라고 해도 문이 완전히 닫혀 있으면 괜히 기분 나빠하는 분들이 있고, 완전히 열려 있으면 들어오지 말아야 할 사람이 그냥 들어옵니다. 특히 12시 30분에서 40분 사이. 그 시간에 문을 두드리는 민원인이 있으면, 일단 시계부터 보세요. 길 좀 묻겠다, 화장실 쓰겠다, 잠깐 서류 하나만 떼겠다... 말은 다 그럴듯합니다. 그때는 “팀장님 허락 없이는 어렵습니다”라고만 반복하세요. 팀장님은 그 시간에 거의 안 계십니다. 그래서 제일 무난한 거절이에요. 괜히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문 더 열지 마세요. 그 시간에 한 번 문을 활짝 열어준 적이 있는데요. 분명히 사람 형체를 보고 문을 열었는데, 문앞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내내 민원실 안에서 젖은 흙 냄새가 진동을 하더라고요. 청소팀 아주머니도 고개를 저으며 나가셨고, 윤 주무관님은 일주일 동안 퇴근할 때까지 제 얼굴을 한 번도 안 쳐다보셨어요.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반만 열어두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2. 윤 주무관님이 이어폰을 끼는 경우 가끔 윤 주무관님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모니터만 뚫어지게 볼 때가 있어요. 그날은 그냥 조용히 계세요. 민원인이 창구를 두드려도, 전화가 몇 번 울려도, 옆에서 누가 고함을 질러도. 윤 주무관님을 쳐다보지 마세요. 그건 업무가 밀려서가 아니라 지금은 듣지 않는 게 좋다는 신호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예전에 한 번, 이어폰을 끼고 있는 윤 주무관님께 “밖에서 누가 계속 주무관님 찾는다”고 귀띔해드린 적이 있어요. 제 말을 들은 윤 주무관님이 천천히 이어폰을 빼더니, 아무 말 없이 자기 모니터에 연결된 CCTV 화면을 가리키더라고요. 분명 제 눈앞에는 창구를 주먹으로 쾅쾅 두드리며 고함을 지르는 남자가 서 있었는데, 화면 속 민원실 입구는 텅 비어 있었어요. 먼지 하나 안 움직이고 정적만 흐르더군요. 윤 주무관님이 다시 이어폰을 끼면서 '저도 보여요'라고 짧게 덧붙이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지더라구요. 그날 퇴근할 때까지 제 등에 식은땀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3. 현성이가 평소와 다른 날 현성이가 보통은 웃으면서 잡일 도와주고 어르신들 대신 서류 작성 도와주고 그럴거에요. 근데 가끔, 창구 쪽 상황을 보고도 미동도 안 할 때가 있어요. 그날은 그냥 두세요. 괜히 “현성아, 이것 좀 도와줄래?” 이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저번에, 어떤 민원인의 서류를 처리해드리고 있는데, 현성이가 구석에 서서 그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더라구요. 제가 무안해서 "현성아, 이리 와서 복사 좀 도와줘"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현성이가 제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그 민원인의 발뒤꿈치 쪽만 계속 응시하면서 뭔가를 중얼거리더군요. 그러더니 그 민원인이 서류를 챙겨서 문밖을 나가는 순간, 현성이가 갑자기 자기 신발을 벗어서 민원인이 서 있던 자리에 거꾸로 뒤집어 놓더라고요. 그 이후 제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주무관님, 오늘 저 사람한테 받은 서류는 그냥 뒤편 서랍에 넣어두세요."라고 한마디 하고는 자리를 비웠어요. 그날 오후, 이장님이 주민센터에 잠깐 들르셨습니다. 별 말씀은 없었고, 팀장님과 차만 한 잔 드시고 가셨어요. 그 이후로 그 서류 얘기는 아무도 꺼내지 않았는데, 며칠 뒤 확인해보니 감쪽같이 사라져 있더군요. 4. 오후 4시 17분 전화 이건 저도 끝까지 이해 못 했습니다. 매일 오후 4시 17분이 되면, 민원실 유선전화가 한 번 울립니다. 딱 한 번. 받으면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아요. 게다가 사람이 내는 숨소리도, 잡음도 없습니다. 처음엔 장난전화인 줄 알았어요. “여보세요? 주민센터입니다.”만 몇 번 말하다가 끊었죠. 윤 주무관님께 말씀드렸더니 “받지 말라고 안 했어요?” 그 한 마디만 하시더군요. 그 뒤로는 4시 17분에 전화 오면 그냥 벨 한 번 울리고 끊기게 둡니다. 이상하게도, 안 받으면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습니다. 5. 흐린 날의 무인민원발급기 점검 우리 센터 입구에 있는 무인민원발급기 말이에요. 시골이라 그런지 비가 오거나 안개가 짙게 낀 날에는 유독 잔고장이 잦아요. 보통은 용지가 걸리거나 돈이 걸리는 문제인데, 가끔 화면에 '인식되지 않는 사용자'라는 붉은색 메시지만 반복해서 뜰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기계 문을 열어서 내부를 보려고 하지 마세요. 한번은 안개가 너무 심한 날, 발급기가 계속 덜컥거리는 소리를 내길래 기계를 열어본 적이 있어요. 분명 용지는 넉넉히 들어있는데, 배출구 안쪽에서 뭔가가 종이를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제가 힘껏 당기자마자 종이가 찢어지면서 안쪽에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안개 낀 날 발급기가 소란을 피우면 그냥 전원 코드를 뽑아버립니다. 팀장님도 그 기계가 이상하면 절대 먼저 다가가지는 않으시더라고요. 주무관님도 기계가 평소와 다른 소리를 내면, 전원 코드를 뽑아버리고 가까이 가지 마세요. 날이 맑아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그게 가장 깔끔한 수리 방법입니다. 6. 문서고 안쪽의 파란색 견출지 서류철 지하 문서고 2번 선반 아래쪽에 보면 파란색 견출지가 붙은 아주 낡은 서류철들이 있을 거예요. 80년대 중반 전입 기록들인데, 가급적 건드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현성이가 가끔 문서고 청소를 도와주다가 그 서류철 근처에서 멈춰 서서 손바닥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 미친 사람처럼 웃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날은 문서고 정리를 중단하고 바로 올라오세요. 저는 호기심에 그 서류철 하나를 펼쳐본 적이 있는데, 분명 전입 신고서인데도 가족 관계란에 이름 대신 그 사람들의 특징만 적혀 있더군요. '왼쪽 눈이 먼 사람, 발목이 가느다란 아이, 멀대같이 큰 남성' 같은 식으로요. 더 이상한 건, 그 서류를 읽고 난 뒤부터 며칠 동안 센터 마당에 있는 개들이 저만 보면 죽어라 짖어댔다는 겁니다. 윤 주무관님이 제 옷에 소금을 한 바가지 뿌려주시기 전까지는요. 7. 팀장님이 ‘관내 출장’ 가방을 챙기실 때 팀장님은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 안 하십니다. 민원인이 멱살을 잡아도 허허 웃으며 넘기시는 분이죠. 하지만 가끔 캐비닛 깊숙한 곳에서 먼지 쌓인 낡은 가죽 가방을 꺼내실 때가 있어요. 그 가방 안을 궁금해하지 마세요. 한 번은 가방 지퍼가 살짝 열린 걸 봤는데, 행정 서류가 아니라 두툼한 밧줄과 짙은 갈색의 끈적한 액체가 담긴 유리병들이 가득하더라고요. 팀장님이 그 가방을 들고 나갈 때 "오늘 점심은 밖에서 먹고 그대로 퇴근해라"라고 하시면, 토 달지 말고 즉시 짐을 싸세요. 그날 밤 주민센터 근처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든, 다음 날 팀장님이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오시든 모르는 척하는 게 상책입니다. 팀장님이 그 가방을 다시 캐비닛에 넣기 전까지는, 이 동네의 모든 민원은 잠시 멈춘 거라고 생각하세요. 8. 131-2번지 부근 전입 신고 우리 관할 구역 끝자락에 131-2번지가 있어요. 그 곳에는 작은 저수지가 하나 있어요. 지도상에는 분명히 집터가 없는데, 간혹 그 주소를 대며 전입 신고를 하러 오는 외지인이 있을 겁니다. 이 민원만큼은 팀장님도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아니, 팀장님은 그 주소만 나오면 아예 자리를 비우거나 못 들은 척 하실 거예요. 윤 주무관님은 그 즉시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로 숨어버릴 거고요. 만약 그 민원인이 "이장님이 여기서 살라고 하셨다"며 웃으면, 절대 현성이를 부르지 마세요. 현성이를 부르는 순간, 현성이가 평소의 그 착한 얼굴이 아니라 처음 보는 기괴한 표정으로 주무관님을 응시하게 될 겁니다. 그럴 땐 당황하지 말고 "해당 필지는 전입이 불가합니다" 라고만 반복하세요. 그 사람이 포기하고 나갈 때까지요. 몇 시간이 걸릴지 몰라요. 저번에는 6시간동안 똑같은 말만 반복했더니 마침내 돌아가더라구요. 아, 혹시라도 진짜로 131-2번지에 전입신고 해 줄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세요. 절대 좋게 안 끝납니다. 9. 창고 뒷편 ‘버려진 제설함’ 주민센터 뒤편, 자재 창고 옆에 보면 오래된 노란색 제설함이 하나 있을 거예요. 염화칼슘 주머니가 몇 개 들어있긴 한데, 제설용으로 쓰지는 않습니다. 가끔 한낮에 그 제설함 뚜껑이 안쪽에서 ‘탁, 탁’ 하고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어요. 그 소리가 들리면 현성이한테 가서 "제설함이 시끄럽네"라고 한마디만 하세요. 그럼 현성이가 무표정하게 가서 제설함 뚜껑 위에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얹어두고 올 겁니다. 돌을 얹은 뒤에도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그날은 창고 근처로 얼씬도 하지 마세요. 예전에 제가 실수로 틈새를 들여다본 적이 있는데, 그 안에는 염화칼슘 주머니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그런데도 소리는 분명히 안쪽에서 뚜껑을 밀어 올리는 소리였습니다. 혹시라도 주민센터에 현성이가 없다고 해서 아무 돌이나 올려놓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냥 좀 신경쓰여도 참는 게 좋을 겁니다. 험한 꼴 보기 싫으면. 10. 팀장님이 이장님과 함께 자리를 비울 때 이건 2년 동안 딱 한 번 있었던 일인데, 혹시 모르니 적어둡니다. 팀장님이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이장님과 함께 주민센터를 나서시며 연락이 두절되는 날이 있을 거예요. 그날은 윤 주무관님이 민원실 출입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셔터까지 내릴 겁니다. "아직 근무 시간인데요?" 같은 질문은 하지 마세요. 셔터 밖에서 마을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며 "등본 떼러 왔다", "불났다",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러도 절대 반응하지 마세요. 윤 주무관님이 귀를 막고 구석에서 떨고 있다면 주무관님도 옆에서 같이 눈을 감으세요. 현성이가 문밖에서 평소처럼 명랑한 목소리로 "주무관님, 저예요. 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해도 절대 속으면 안 됩니다. 현성이가 정말로 문밖에 있다면, 절대 문을 두드리지 않고 팀장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조용히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을 테니까요. 밖이 완전히 고요해지고 팀장님의 구두 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릴 때까지는, 그 누구의 목소리도 믿지 마세요. 팀장님의 구두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바로 반응하지 마세요. 팀장님은 복도 끝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일부러 구두 굽 소리를 크게 내며 걸어오실 겁니다. 그리고 민원실 문 앞에서 딱 멈춰 서서 “윤 주무관, 나 왔어. 문 열어.”라고 하실 거예요. 이때 윤 주무관님의 반응을 잘 보세요. 만약 윤 주무관님이 여전히 귀를 막은 채 고개를 젓고 있다면, 밖에서 들리는 건 팀장님의 목소리도, 팀장님의 구두 소리도 아닙니다. 진짜 팀장님은 아무리 급해도 절대로 윤 주무관님의 이름을 먼저 부르지 않으시거든요. 진짜 상황이 종료되면, 팀장님은 아무 말 없이 셔터를 밖에서 직접 열쇠로 따고 들어오실 겁니다. 왜 불도 안 켜고 구석에 박혀 있는지 묻지도 않으시고, 그저 “오늘 다들 고생했다. 일찍 들어가 봐.”라고만 하실 거예요. 그날 퇴근길에 현성이를 마주친다면, 현성이가 평소처럼 웃으며 인사해도 그냥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가세요. 혹시라도 현성이가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세요. 다음 날 아침이면 현성이는 어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듯이 웃으며 주민센터에 나와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적겠습니다. 여기 적힌 것들이 전부는 아닙니다. 제가 본 것들 중, 그래도 글로 남겨도 되겠다고 판단한 것들만 적었습니다. 근무하시다 보면 수칙에 없는 극한의 상황을 맞닥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주무관님 오른쪽에 있는 서랍의 맨 밑 칸을 열어보세요. 제가 자물쇠로 잠가 놓았는데 비밀번호는 1695 입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전임 주무관 드림.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