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드르륵... 쿵

작가: marketvalue

[1] 드르륵... 드르륵... 쿵 "아 진짜 씨발!"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나는 겉옷을 대충 걸쳐입고 현관을 나섰다. [2] 내가 이 아파트에 이사 온 것은 불과 몇주 전의 일이었다. 최고급 신축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관리 상태가 좋은 가성비형 아파트였다. 아파트 자체는 나름 만족스러웠지만, 치명적 단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층간소음이었다. 이놈의 층간소음은 다른 장점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801호. 이 개자식은 대체 밤마다 거실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길래 밤마다 무거운 쇠공 같은것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마침내 폭발하고야 말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인내심마저 바닥나 비상계단을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801호의 문 앞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신경질적으로 연타했다. 잠시 후,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나는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쏘아붙였다. "저기요, 701호인데요. 지금 시간이 몇 시인 줄 아세요? 밤마다 뭘 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적당히 좀..." 문틈 사이로 슬쩍 보인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쏟아내려던 욕설이 목구멍 뒤로 쑥 들어갔다. 그 남자의 상태는 나보다 훨씬 더 엉망이었다. 다크서클이 검게 내려앉았고, 누가 봐도 엄청나게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는 항의가 익숙하다는 듯 힘없이 문을 열었다. "일단 들어오세요. 차라도 한잔 하시죠." 내부에서 확인한 801호의 내부에서는 왠지 모를 기괴함이 느껴졌다. 바닥 전체에 너덜너덜해진 방음 매트가 겹겹이 깔려 있었다. 천장 또한 스티로폼 박스로 도배되어 있었다. "701호 분이시죠? 믿기 힘들겠지만, 저도 미칠 지경입니다. 저도 이 소음때문에 한숨도 못 잤거든요. 위에서 계속... 뭔가 묵직한 게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려요. 방금 전에도요." 천장을 본 순간, 소름이 돋았다. 드르륵... 드르륵... 쿵. 내 집에서 듣던 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소음이 801호의 천장에서 울리고 있었다. 801호 남자는 범인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901호? 1001호? 머리 속에서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죄송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이사왔거든요. 선생님도 고생이 많으시군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 허탈한 표정의 남자를 뒤로하고 내 집으로 내려왔다. 한숨을 내쉬며 현관문을 닫는 순간, 이번엔 내 집 문을 부술 듯한 기세로 벨이 울렸다. '딩동! 딩동! 딩동!' 나는 인터폰을 확인하지도 않고 문을 열었다. 어떤 여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601호 여자였다. 그녀는 매우 신경질적인 말투로 나에게 캐물었다. "저기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적당히 좀 하라고요, 제발!"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은 채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방금 집에 들어온 참이었고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거짓말 마세요! 저도 다 봤어요. 아저씨가 방금 위층으로 뛰어 올라갈 때도, 복도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상한 소리가 멈추질 않는단 말이에요!"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현관 안쪽으로 몸을 한걸음 들이밀었다. "밤마다 이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서 정말 미치겠다구요." 여자의 눈에는 단순한 짜증을 넘어선 피로와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기요, 진정하세요. 저 정말 방금 들어왔다니까요? 집안에 아무도 없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들어와서 확인해 보세요." 나는 억울함을 증명하기 위해 문을 활짝 열고 비켜섰다. 여자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훑어보더니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거실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그저 일반적인 가정 집의 풍경. 특별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보세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저도 위층 때문에 방금 전까지..." "조용히 해봐요." 여자가 내 말을 가로막으며 바닥을 가리켰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내 시선도 발밑으로 향했다. 드르륵... 드르륵... 쿵. 들렸다. 분명히 들렸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3] 결국 601호 여자는 아무 수확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갔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나도 어젯밤에 위층 때문에 잠을 못 잤다'는 변명뿐이었고, 그 말은 그녀의 표정을 더 굳게 만들 뿐이었다. “그럼… 그냥 참으라는 말씀이세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런 뜻은 아니라고, 나도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이미 신발을 신고 있었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녀의 뒷 모습은 왠지 모르게 경쾌해 보였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경비실을 찾았다. 어제보다 훨씬 차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지만 경비원의 반응은 전혀 기대와 달랐다. 그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메모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놓고 귀찮다는 태도였다. 그가 말했다. “층간소음은 개인 간 문제라서요. 경비실에서 개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 확인이라도—” “관리사무소 쪽으로 접수하셔야 합니다.” 말은 정중했지만,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더 묻지 못하고 경비실을 나섰다. 등 뒤에서 TV 소리가 다시 커졌다. 관리사무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직원은 내 이야기에 공감하는 척 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지나치게 사무적이었다. 내가 물었다. “혹시 다른 세대에서도 같은 불만이 있습니까?”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한 번도 없었다구요? 801호나 601호, 702호 이런 사람들 말이에요.” “그쪽은 문제 제기한 적이 없어요.” 그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마치 답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듯이. 그날 저녁, 나는 망설이다가 702호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누르자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중년의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무슨 일이시죠?”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상황을 설명했다. 위아래층에서 공 굴러가는 소리 같은 게 들리는데, 혹시 비슷한 걸 느낀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뇨. 전혀요.” “밤에도요?” “밤에도요.” 그의 대답은 너무 단호해서, 오히려 내가 말을 잘못 꺼낸 사람처럼 느껴졌다. “혹시… 요 며칠 사이에라도...” “정말 아무 소리도 못 들었습니다. 수고하세요.” 문이 닫히고, 나는 한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801호는 결백하며, 자신도 피해자라고 했고, 601호는 나에게 항의했고, 702호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했다. 역시 오늘도, 똑같은 소음이 들려왔다. 드르륵... 드르륵... 쿵 [4] 그날 밤, 나는 결국 녹음을 하기로 했다. 스마트폰 하나를 바닥 한가운데 두고, 혹시 몰라 서랍 속에 있던 오래된 녹음기도 함께 켜 두었다. 드르륵… 드르륵… 쿵. 다음 날, 나는 지인에게 소개받은 음향 전문가 프리랜서에게 파일을 보냈다. 층간소음인지, 구조적 문제인지, 아니면 착각인지. 뭐라도 좋으니 답을 듣고 싶었다.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소리 파일 잘 들었습니다.' 그는 분석 결과를 설명해 주겠다며 통화를 요청했다. 그가 말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요. 이 소음, 자연스러운 생활 소음은 아닙니다.”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층간소음 아닌가요?” “층간소음일 수는 있는데요.” 그는 잠시 말을 고르듯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패턴이 너무 정확해요.” “정확하다고요?” “네. 굴러가는 속도, 충돌 지점, 잔향까지 거의 같습니다. 보통 사람이 의도적으로 낸 소음이라면, 소리가 미세하게라도 달라지거든요.” 나는 스마트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그럼… 기계라는 건가요?” “기계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녹음된 소리를 반복 재생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얼굴들이 있었다. 801호 남자의 피곤한 눈. 601호 여자의 초조한 표정. 그리고 그 둘이, 묘하게도 같은 소리를 듣고 있다고 말하던 장면.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게... 위에서 나는 소리인지, 아래에서 울리는 소리인지는 알 수 있나요?”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게 제일 이상한 점입니다.” “파일만 놓고 보면, 위인지 아래인지 특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복잡한 생각에 휩싸였다. 기계 같다는 말. 너무 똑같다는 말. 위인지 아래인지 알 수 없다는 말. 그날 밤, 나는 다시 녹음을 켰다. 이번에는 일부러 불을 끄고, 소파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쿵. 나는 천장을 봤다가, 다시 바닥을 봤다. [5] 나는 녹음 파일을 다시 재생했다. 볼륨을 평소보다 조금 키웠다. 바닥에 두었던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소리가 울리는 방향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드르륵… 드르륵… 쿵.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마트폰에서 재생되는 소리와 실제로 들려오는 소리가 미묘하게 겹쳤다.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긋나지도 않았다. 마치 두 개의 음원이 같은 박자를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둘은 끝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며칠 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801호 남자를 마주쳤다. 그가 먼저 물었다. “요즘도 많이 시끄럽죠?” “뭐… 여전하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럴 줄 알았어요.” 그 말이 이상했다. 위층에서 나는 소음에 시달리는 사람의 반응치고는 너무 담담했다. 며칠 후에는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다 분리수거장에서 601호 여자를 봤다. 그녀는 나를 보자 잠시 멈칫했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말했다. “관리사무소에는 얘기해보셨어요?” “해봤죠.” 그녀는 짧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뭐라고 하던가요?” 마치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을 확인하듯이. 그날 밤에도 소리는 변함없이 울렸다. 드르륵… 드르륵… 쿵. [6] 이상한 건, 어느 순간부터 소리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먼저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소리는 여전히 들렸다. 드르륵… 드르륵… 쿵. 801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피곤한 눈, 하지만 요즘은 더 이상 불평하지 않는 태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요즘은 좀 괜찮아졌죠?” 괜찮아졌을리가 있는가? 이 지긋지긋한 소리는 여전히 나를 미치게 하는데. 그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 표정은 마치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사람 같았다. 601호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주치면 눈을 피하거나, 괜히 분리수거 봉투를 세게 내려놓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먼저 인사를 했다. “요즘은 좀 조용하지 않아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로 조용한지 아닌지보다, 왜 그런 질문을 나에게 하는지가 더 신경 쓰였다. 관리사무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제는 아예 내 호수인 701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직원은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요즘은 불편한 점 없으시죠?” [7] 어느 순간부터 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스스로를 점검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닌지. 이 정도 소음은 어디에나 있는 건 아닌지. 혹시 이전 집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건 아닌지.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확신은 없었다. 그 사실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더 이상 녹음을 하지 않았다. 소리를 멈추게 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드르륵… 드르륵… 쿵. 그 소리는 이제 생활 소음처럼 존재했다. 냉장고의 모터 소리처럼,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소리처럼. 나는 점점 아무에게도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설명하는 순간, 이상한 사람은 항상 내가 되었으니까. [8] 그날 저녁,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801호 남자와 601호 여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잠깐 괜찮으세요?” 801호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요즘 얼굴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서요.” 601호 여자가 곁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편안해 보여요. 저도 적응되니까 좀 살만한 것 같기도 하고요.”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대답했다. “네, 뭐. 이제는 좀 적응돼서요.” 말을 내뱉고 나서야 깨달았다. 정말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걸. 801호 남자는 안도한 듯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혹시라도 더 심해지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저희도 괜히 예민하게 군 건 아닌지 계속 신경 쓰였어요.” 601호 여자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예전의 그 날카로운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잠깐의 침묵. 그 사이에도 소리는 들렸다. 드르륵… 드르륵… 쿵.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럼, 쉬세요.” 801호 남자가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나를 한 번 더 바라봤다. 문이 닫히고, 나는 한동안 현관 앞에 서 있었다. [9] 그날 밤이었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드르륵… 드르륵… 쿵. 그 익숙한 소리 사이에, 낯선 소리가 끼어들었다. 까드득. 나는 눈을 떴다. 퍽. 몸이 움찔했다. 우지직. 이번엔 분명히 들렸다. 굴러가는 소리가 아니었다. 부딪히는 소리도 아니었다. 무엇인가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까드득. 퍽. 우지직. 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불규칙했고, 훨씬 이질적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이제는 항의할 생각도, 녹음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이런 생각이 스쳤을 뿐이다. 아, 소리가 바뀌었구나. 나는 천장을 한 번, 바닥을 한 번 바라봤다. 어느 쪽에서도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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