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의 맛
작가: marketvalue
나는 혀를 잃었다. 물리적으로 잘려 나갔다는 뜻은 아니다. 3개월 전 지독한 독감을 앓고 난 뒤, 내 미각은 완전히 왜곡됐다. 설탕을 씹으면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났고, 갓 지은 밥에서는 젖은 소 가죽 냄새가 났다. 살기 위해 먹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그저 고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K'라는 남자를 알게 됐다. 그는 감각이 마비되거나 왜곡된 사람들을 위한 '대리 미각'을 제공한다고 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제가 음식을 먹고, 그 감각을 손님께 실시간으로 전송해 드리는 거죠." K는 내 집 주방에서 기이한 장치를 꺼냈다. 복잡한 기계가 아니라, 가느다란 구리선으로 연결된 두 개의 패치였다. 하나는 그의 관자놀이에, 하나는 내 관자놀이에 붙였다. 그가 첫 요리로 가져온 것은 평범한 스테이크였다. 하지만 그가 고기를 한 점 잘라 입에 넣는 순간, 내 온 몸의 신경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아찔했다. 육즙의 고소함, 버터의 풍미, 적당한 소금기가 뇌 속에서 직접 폭발했다. 내 입은 아무것도 씹고 있지 않았지만,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극상의 맛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어떻습니까? 제 감각은 일반인보다 20배 이상 예민하게 튜닝되어 있습니다." K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홀린 듯 그에게 거금을 지불했고, 매주 금요일마다 그는 내 집을 방문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이상한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다. K가 오지 않는 날에도, 내 입안에서 '내가 먹지 않은 것'의 맛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화요일 오후에는 갑자기 입안에서 비릿한 굴 향이 퍼졌다. 수요일 밤에는 쌉싸름한 와인의 여운이 혀끝을 맴돌았다. 처음에는 '공짜로 맛을 보니 좋다'고 생각했다. K가 어디선가 맛있는 걸 먹을 때마다 그 감각이 나에게도 공유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맛의 종류가 점점 기괴해졌다.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깬 내 입안에 가득 고인 것은 타는 듯한 쓴 맛과 건전지를 핥는 듯한 불쾌한 맛이었다. 나는 구역질을 하며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뱉어낼 수 있는 건 맑은 침뿐이었다. 그 주 금요일, K가 도착했을 때 나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당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K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차분하게 내 손을 뿌리쳤다. "아, 적응기군요. 손님. 감각의 동조가 깊어지면 손님의 감각도 예민해집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궁극의 맛에 다가가는 과정일 뿐이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역겨운 맛만 가득했는데." "그게 손님의 '진짜 미각'입니다." K가 묘한 말을 내뱉었다. "손님의 미각은 왜곡된 게 아닙니다. 확장된 거죠. 이제 당신은 남에게 강요된 맛이 아니라, 스스로 모든 것들의 '본래 맛'을 느끼기 시작한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대답이었다. 나는 K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다시는 내 눈 앞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뭐, 좋습니다. 하지만 돌이킬 수는 없을 겁니다." 화가 잔뜩 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K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분고분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날 이후, 나의 일상은 더욱 끔찍하게 변했다. 더 이상 K와 만나지 않았지만, 내 미각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예민해졌다. 후각과 미각은 매우 밀접한 관계라 했던가. 이제 내 입안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맛이 느껴졌다. 지나가는 사람과 스칠 때는 그 사람의 땀 냄새가 역겨운 산성 맛으로 느껴졌고, 낡은 소파에 앉으면 수년간 쌓인 먼지가 텁텁한 곰팡이 맛으로 변해 목구멍을 긁어댔다. 점점 피폐해지던 나는, 왜곡되어 있던 예전의 미각이 그리워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최대한 집 밖을 나가지 않으려 했다. 사람들이 많을수록 맛은 겹쳐졌고, 겹쳐진 맛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았다. 지하철 안에서는 쇠와 땀과 오래 씻지 않은 머리카락의 맛이 한꺼번에 밀려와 혀뿌리를 마비시켰다. 숨을 참아도 소용없었다. 이제는 들이마시지 않아도 느껴졌으니까. 집 안은 그나마 안전한 편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맛들만 있었다. 가구의 나무 맛, 세제에 절여진 바닥의 쓴맛,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매캐한 먼지의 맛. 하지만 안전하다는 건, 견딜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는 맛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잠을 자면 잠시나마 편안해졌었다. 의식이 끊기면 감각도 따라 멎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잠에서 깨어날 때가 아니라, 잠들기 직전이 가장 괴로웠다. 눈을 감으면, 어둠의 맛이 느껴졌다. 아무 냄새도 없는 공간인데, 입안에는 눅눅한 천을 오래 물고 있었던 것 같은 맛이 가득 찼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나는 몇 번이나 구역질을 했다. 음식은 거의 먹지 않게 됐다. 먹는 행위 자체가 새로운 맛을 더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완전히 끊을 수는 없었다. 몸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요구했다. 씹지 않고 삼키는 법을 익혔다. 맛을 느끼지 않으려고 혀를 최대한 굳힌 채로.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맛은 더 선명해졌다. 이제는 거울을 보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내 얼굴에서 맛이 났다. 피부에서는 미묘한 짠맛과 금속성의 잔향이 섞여 올라왔고, 입술 가까이에서는 오래 씹은 종이 같은 맛이 느껴졌다. 양치질을 해도 소용없었다. 혀를 닦을수록, 혀가 아닌 곳에서 맛이 느껴졌다. 목구멍, 잇몸, 그리고 더 안쪽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느끼는 맛이 지금의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게 됐다. 방금 느낀 맛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맛이 그 위에 덧씌워졌다. 겹치고, 뭉개지고, 구분되지 않은 채 남았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움직이면 새로운 맛이 생겼고, 가만히 있어도 맛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안을 정리하다가 문득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습관처럼, 맛을 느끼려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쓴맛도, 늘 배경처럼 따라붙던 먼지의 텁텁함도 없었다. 혀가 아니라, 입안 전체가 텅 빈 것처럼 조용했다. 처음에는 내 감각이 잠시 둔해진 줄 알았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각도를 바꿔 보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도 결과는 같았다. 유일하게 그것만은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다른 모든 것들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제멋대로 맛을 욱여넣는데, 그것만은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하루종일 그 앞에 앉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그것을 바라보면서. 왜 그런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고민하는 순간, 그것에게도 다시 맛이 생길 것만 같았다. 지금도 입안에는 여전히 수많은 맛이 남아 있다. 사람의 맛, 공기의 맛, 집 안에 쌓인 시간의 맛. 하지만 고개만 조금 돌리면, 시야 한쪽에 아무 맛도 나지 않는 그것이 있다. 나는 오늘도 그걸 확인한 뒤에야 잠자리에 든다. 눈을 감기 전까지, 그것이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되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