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샤프 ?

작가: 방울한올

"분명히 이 주소가 맞는데 말이죠..?" "그런 건 모르겠고! 얼른 꺼지쇼!" 나는 늦은 밤 갑자기 집에 찾아온 남성을 문전박대하며 문을 쾅하고 닫을 뿐이었다. 그렇게까지 신경질적으로 대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왠지 모를 짜증이 밀려온 탓이었다. "케샤프.. 라고 했던가?" 남자가 입에서 그 단어를 내뱉자마자 두통과 어지럼증이 나를 덮쳤고, 그를 빨리 쫓아내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친 몸을 끌고 소파에 앉았지만, 쉽사리 이 짧은 소동을 머릿속에서 떨쳐내진 못했다. 뜬금없게도, 저 세 글자의 단어가 무얼 뜻하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 단어에 이유가 불분명한 위기감을 느꼈음에 불구하고, 무언가를 잊어버린 듯한 감각과 함께 그것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는 갈망에 가까운 의무감이 몰려왔다.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하던 중, 아내가 소란을 듣고 잠에서 깼는지 방에서 나왔다. "여보, 누구 왔어?" "아니.. 깨워서 미안. 그런데 혹시.. 케사프라는 거 들어본 적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봤으나 아내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별일 없다는걸 깨닫곤 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정말로 별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 단어가 너무나 신경 쓰여 미칠 것만 같았다. 머리가 아프다. 자야할 시간이 다가왔지만, 이 의문을 해소하고픈 욕망에 따라 몸이 움직였다. 어쩌면 이 의문은 꽤나 간단히 끝날지도 모른다. 우리 인류에게는 소통의 장, 인터넷이 있지 않은가! 나는 의자에 털썩 앉아 노트북을 펼치곤, 호기롭게 인터넷 검색창에 그 단어를 입력했다. 그러나 밝은 직사각형의 화면은 내 기대를 단칼에 거절했다. [케사츠]: 검색결과 없음. 적어도 비슷한 무언가쯤은 나올 줄 알았다. 검색창의 공허함은 너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기에, 잠시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화면을 멍하니 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박박 긁었다. "대체 케나츠가 뭐냔 말이야.." 이 작은 중얼거림은 허공을 헤매다 길을 잃고 흩어질 뿐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골머리를 앓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서가 부족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향했다. 걸음걸이와 속도를 최대한 좀 전과 비슷하게 맞추면서. 문을 열곤, 방금 집에 찾아왔던 남성의 행색과 나눴던 대화를 상기시켰다. 아무도 없음에도 그와 대화를 하는 듯이 여러 말을 중얼거리며 최대한 그를 떠올려본다. 누가보면 미쳤나 싶겠지만, 놀랍게도 조금은 도움이 됐나보다. 그는 수리공과 같은 복장에, '설치'라는 말을 내뱉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건 기계였을지도 모르겠다. 머릿속 퍼즐 조각이 하나 맞춰진 느낌이다.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희망도 잠시, 새로운 의문이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다. 나는 대체 왜 그 단어에 이 정도로 집착하고 있지? 이제와서 이런 생각을 하긴 좀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다만, 지금의 행동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까지는 종종 솟아나는 충동적인 강박쯤으로 생각했으나, 나는 이런 야심한 새벽에 허공을 보며 대화를 나눌 정도로 유별난 사람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내 머릿속 근질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사소한 잡념은 나중으로 미루고, 이 빌어먹을 고름부터 짜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그것이 기계라는 나만의 가설에 따라, 밤이 깊었으나 정비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직업 정신이 투철한 그는 최신 기계도 대부분 알고 있기에, 희망을 걸어볼 만 하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다행히도 친구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뭔 일인데 이런 시간에 전화를.."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한데, 혹시 케나크가 뭔지 아냐?" "뭐라고?" "테나크라는 기계 알고 있냐고." "테나크라는 단어는 듣도보도 못했는데.." "잘 못 들었나 본데, 똑바로 들어봐. 테, 나, 프. 이거 진짜 몰라?" "미안한데 난 정말 모르는 기계야. 테나프? 그게 뭐길래 그래?" "아니, 체나프라니까? 집중 좀 해, 중요한 일이라고." "..." "여보세요? 듣고 있어?" "...왜 계속 말이 바뀌냐? 이런 시답잖은 장난 칠라고 전화건거냐?" "말이 바뀐다고? 뭔 말이야? 나 지금 진지해." "아까부터 테나프인지 뭔지, 자꾸 말하는 단어가 바뀌잖아. 자는 사람 깨워서 뭐하자는 거냐? 하.." "뭐? 잠깐만," 친구는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고, 얻은 정보도 없이 머리에는 의문만 늘었다. 단어가 바뀐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내가 단어를 계속 바꿔서 말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분명히 같은 단어를 말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어쩌면.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확실히 지금의 나는 내가 보기에도 정말 이상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상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평소라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어쩌면. 내가 한 말을 의식하며 그 단어를 반복해 천천히 말해본다. 목소리의 떨림은 공기를 요동치게 한다. "체라프.. 체라스.. 페라스..." 정말이었다. 그 단어는 내 머릿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는 무서울 지경이다. 내가 미치기라도 한 걸까? 검색 기록에 남아있던 '케나츠'라는 단어는 적어도 내 머릿속의 단어와는 달랐다. 달랐다가, 비슷했다가, 다시 달라졌다. 원래의 단어가 뭐였는지는 짐작도 할 수 없다. 인지하고 나서는 단어가 변하는 것도 멈출 수 없다. 혼란스럽다. 두통이 머리 밖으로 새어나온다. 이쯤되니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애초에 그 수리공은 진짜 우리 집에 온 게 맞을까? 의문의 발단이 되는 수리공의 존재마저 입증할 수 없었다. 오직 나만이 그를 보고 대화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지독한 정신병이 돋은걸 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내 망상일 뿐이라는 끔찍한 생각이 등골을 스쳤다. 여전히, 머리가 아프다. 생각해보니,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수리공의 존재는 입증할 수 있다. 이 건물의 관리실로 가서 CCTV를 보여달라고 하면 해결될 문제다. 물론 그 결과는 나에게 광인의 낙인을 안겨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일을 끝마칠 필요가 있었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현관문으로 향한다. 방금 전과 같은 속도, 같은 보폭으로. 황급히 신발에 발을 욱여넣고는 문고리로 손을 뻗었다. 문을 열자, 남자가 서 있었다. 수리공의 복장을 한, 그 남자가. 순간 벙쪄서 남자를 위아래로 몇 번을 흘겨봤다. 너무 당황하면 말도 안 나온다는 것을 다시금 체감했다. 나는 입을 떼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 안 주무셔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혹시.. 어디 가시는 길인가요?"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도 모르게 그만 대답해버렸다. "네, 네. 경비실을 가려고.." "이런 시간에 경비실은 어쩐 일로..?" 이어서 대답하려던 입을 꽉 다물었다. 이런 대화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니,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졌다. 당장 그 단어의 정체를 물어봐야 한다. "그,그건 됐고..! 아까 당신이 말한, 그 단어는 대체 뭡니까??" 거의 고함치듯이 물어본 탓에, 수리공은 당황한 눈치였다. "네? 뭘 말씀하시는 거죠?" "그.. 그거 말입니다, 체카브!.. 켈사트? 아니, 테카츠..?" 말 그대로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내가 뭘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지럽다. 수리공은 잠시 생각하는 듯 보이더니 갈피를 잡았나 보다. "아~ 케샤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수리공이 다시 그 젠장할 단어를 꺼내자, 머리 안쪽이 터질 듯이 아파왔다. 그럼에도 머리를 부여잡으며 대답했다. "윽!.. 그래요, 그거! 그게 대체 뭐냐고요!!" "음.. 그건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비유하자면, 마치 고양이가 뭐냐고 묻는 것과 같달까요?" "씨발.. 뭐라는 거야.." 이쯤되니 짜증과 고통이 분노로 변질되어간다. 저 빌어먹을 놈의 위태로운 미소는 나를 비웃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의 멱살을 부여잡고는, 호통쳤다. "시발새끼야, 당장 그게 뭔지 대답하라고!!" "진정하세요..! 당신이 이해할만한 수준으로는 설명하기 힘듭니다!" 아, 이젠 정말 참을 수가 없다. 곧 머리가 터진다. 분명히 터질 것이다. 저 새끼를 죽이면 이 고통이 사라질까?? 딱 한 번만 더 물어보고, 또 지랄맞은 헛소리를 지껄이면 기필코 죽여버려야겠다. "그 좆같은 단어가 내 머리 안에서 기어 다닌다고!! 저게 뭐든 간, 당장 아는 걸 말해!!! 그렇지 않으면.." 그는 내 말을 끊고 다급히 외쳤다. "알려 드릴게요! 알려 드린다고요..!!" "진작에 그렇게 나왔어야지!" "일단 이것부터 놓으시면, 당신이 알만한 단어로 대답해 드리죠.." 화를 잠시 누그러뜨리니 다시금 두통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나는 고통에 몸서리치며 그를 붙잡던 손을 놓았고, 그는 옷을 툭툭 털더니 내게 천천히 말해줬다. "케샤프는.. 아칸달스의 새로 출시된 모델명입니다." "아." 그의 답변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내 모든 의문을 풀어줬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하고 있었을까? 그 대답과 함께, 날 괴롭히던 두통과 어지럼증도 말끔히 사라졌다. 마음이 한없이 상쾌하다. 동시에, 이 모든 일련의 상황이 설명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꽤나 무안한 기분이 들어 얕은 헛웃음이 나왔다. "아.. 하하하.. 정말 죄송합니다. 별일도 아닌데 소란을 피웠네요.." "괜찮습니다. 아칸달스가 오래되면 가끔 이런 주택이 있더라구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나는 미친 게 아니었다! 헌데, 거실 한편에 보란 듯이 존재하고 있는 아칸달스를 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걸까. "그나저나 저는 왜 아칸달스를 까먹고 있던 걸까요.. 괜히 미안해지네요." "음.. 지금 피곤하셔서 그런 걸 거에요. 너무 깊게 생각하진 마시죠." 확실히, 모든 의문을 해소하고 나니 그동안 쌓인 피곤이 밀려왔다. 시간도 많이 늦었고 말이다. 이 해방감과 함께라면 깊은 단잠에 들 수 있겠다. 얼른 해치우고 이만 들어가 자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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