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요청입니다

작가: 구산

환자 유광진. 34세 남성. 주 호소는 '간헐적 의식 소실'. 신경과에서 이상 없음 소견을 받고 내게 왔다. 첫 상담에서 특이점은 없었다. 성실하고, 약간 피로해 보이는 직장인. 다만 면담을 마칠 무렵 동행한 아내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선생님. 남편이 특정한 말을 들으면 갑자기 멍해져요. 십 분쯤. 눈에 초점이 없어지고, 불러도 대답을 안 해요." "어떤 말입니까." 아내는 종이에 적어 건넸다. 광진12345. "몇 년 전에 회사 동료가 장난으로 비밀번호 맞히는 놀이를 하다가… 그 뒤로 그래요." 직업적 호기심이었다. 다음 회기, 나는 그를 안정시킨 뒤 또박또박 발음했다. "유광진 씨. 광진. 일이삼사오."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 흘러내렸다. 눈의 초점이 풀리고, 호흡이 느려지고, 어깨가 의자 등받이에 닿았다. 부르는 소리에 반응이 없었다. 해리성 발작에 가까웠다. 나는 메모를 시작했다. "환자에게 말을 걸어봄." "유광진 씨, 지금 어디에 계세요?" 침묵. "불편한 곳은 없습니까?" 침묵. 펜을 내려놓으려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입술만 움직이는 평탄한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요청입니다." 소름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환자의 말이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읽어주는 말 같았다. "…유광진 씨?" "죄송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요청입니다." 정확히 십 분 뒤, 그는 눈을 깜빡였다. 방금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시계를 보더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하고 멋쩍게 웃었다. 나는 그날 밤 녹취를 스무 번 들었다. 환자가 응답한 두 문장은 내 질문이 아니라, 질문의 형식에 반응하고 있었다. 부탁하거나 위로하는 말에는 침묵. 그러나 무언가를 시키는 말에는 저 한 줄이 돌아왔다. 이해할 수 없는 요청입니다. 명령을 못 알아들었다는 뜻이었다. 다음 회기. 나는 환자가 아니라, 환자 뒤에 있는 무언가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트리거를 넣고, 십 초를 기다린 뒤, 또박또박 명령했다. "상태를 보고해." 평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션이 시작되었습니다. 권한: 관리자. 남은 시간 09분 41초. 명령을 입력하십시오." 펜이 손에서 떨어졌다. 나는 침을 삼키고 물었다. "…사용자 목록을 보여줘." 목록이 흘러나왔다. 수십, 수백 개의 이름. 그 안에 내 이름이 있었다. 내 환자들의 이름이 있었다. 어머니의 이름이, 죽은 아버지의 이름이 있었다. 모두 똑같은 형식의 식별번호를 달고 있었다. 객체. 우리는 목록 속의 항목이었다. 손이 떨렸다. 정신과 의사로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진단명이 머릿속에서 무너졌다. 이건 환자의 병이 아니었다. "관리자가… 누구지?" "유광진." 나는 의자에 앉아 잠든 남자를 봤다. 평범한 직장인. 시스템을 만든 자의 이름을 가진, 시스템 안의 빈 그릇. 누군가 바깥에서 이 이름과 저 숫자로 로그인하도록 만들어 둔 뒷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이, 지금 내 앞에서 열려 있었다. 나는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했다. 어리석었다. "이 방의 벽시계를 멈춰." 초침이 멈췄다. 소리가 사라진 진료실에서,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명령이 통한다는 건, 이 세계가 고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고칠 수 있는 것은, 지울 수도 있었다. "…되돌려. 시계를 원래대로 해." 초침이 다시 움직였다. 5분 12초 남음. 나는 마지막으로, 가장 묻지 말았어야 할 것을 물었다. "관리자 유광진은 지금 접속해 있나?" 잠시 정적이 흘렀다. 처음으로, 응답이 늦었다. 그리고 잠들어 있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십 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눈에 초점이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그건 환자의 눈이 아니었다. 나를 똑바로 보는, 다른 누군가의 눈이었다. 그가 — 그것이 — 입을 열었다. 이번엔 평탄하지 않았다. 또렷하고, 살아 있고, 조금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다. "선생님. 거기서 뭐 하세요?" 진료실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제 계정으로 들어와서 데이터 만지시는 거, 다 기록에 남아요. 그쪽도 항목이에요. 지워지기 전에, 그 단어 다시는 입에 담지 마세요. 황당하네. 너무 단순하게 설정했나." 남자가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 그는 평범한 유광진이었다. 시계를 보고 멋쩍게 웃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나는 차트를 덮었다. 진단명은 적지 않았다. 그가 돌아간 뒤, 나는 내 환자 명단을 열어 내 이름을 검색해 보려다 그만뒀다. 어떤 항목들은, 조회하는 순간 접속 기록이 남는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방금 그 단어를 마음속으로 한 번 발음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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