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를 만들어 탈출하세요.

작가: 더지니어스

새하얀 밀실. 천장도, 바닥도, 벽도 온통 희다. 오직 하나, 정면의 거대한 벽만이 검을 뿐. 알 수 없는 재질의 검은 벽에는, 그 한가운데에 문장이 새겨져 있다. [ 이 너머에 출구가 있다. ] < 규 칙 > 방 안에는 종이 한 장과 펜 한 자루가 있다. 입장과 동시에 단어 하나가 제시된다. 제시된 단어에서 음운 하나를 더하거나, 빼거나, 교체하라. 새로운 단어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다면, 해당하는 물체가 방에 나타난다. 10분 안에 제대로 된 단어를 만들지 못하면 처형된다. 탈출 방법은 두 가지. 입장 후 30일이 지나거나, 출구를 통해 나가거나. 행운을 빕니다. ⠀ ⠀ 1. 오지훈 (33, 직장인) 제시어: 토끼 답: 도끼 생존 기간: 6시간 사인: 자살 비고: 도끼가 손에 들어온 지 4초 만에 대상자는 검은 벽으로 달려갔다. 첫 한 시간 동안 412회를 휘둘렀고, 그 무렵 양손 안쪽 피부가 찢어졌다. 3분간 멈춰 소매를 찢어 손에 감은 뒤 다시 187회를 휘둘렀다. 두 시간째, 검은 벽에 손톱만한 흠집이 하나 났다. 대상자는 그 흠집을 11분 동안 들여다보았다. 그 뒤 같은 자리를 30회 더 찍었으나 흠집은 더 커지지 않았다. 여섯 시간째, 대상자는 도끼를 떨어뜨렸다가 다시 주워 웃으며 자신의 목을 그었다. ⠀ 2. 김상호 (47, 인테리어 시공업자) 제시어: 방치 답: 망치 생존 기간: 9시간 사인: 심장마비 비고: 대상자는 망치로 검은 벽의 한 점을 분당 약 60회로 내리쳤다. 두 시간이 지나자 속도가 분당 20회로 떨어졌다. 손바닥 굳은살이 벗겨졌고, 앞사람이 낸 흠집 옆에 비슷한 흠집이 하나 더 생겼다. 일곱 시간째 망치를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었다. 그 자세로 1시간 50분을 더 있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 3. 조성민 (18, 고등학생) 제시어: 지리 답: 지뢰 생존 기간: 7시간 45분 사인: 폭사 비고: 대상자는 작성 직후 눈 앞에 나타난 거대한 부비트랩 장치를 보고 뒷걸음치다 넘어졌다. 수 분을 가만히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부비트랩에 다가와 건드리지 않고 살폈다. 이후 또다시 수 분간 머리를 쥐어뜯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렸고, 밀실 안을 서성이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시간 후, 대상자는 부비트랩을 밀어 검은 벽면의 정 중앙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달려가 검은 벽을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부비트랩을 이번엔 검은 벽면의 오른쪽 끝까지 밀었다. 이후 이번에는 대각선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맞은편에서, 대상자는 자신의 오른쪽 신발을 벗어 손에 쥐더니 15분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직후 던진 신발은 부비트랩을 비껴갔다. 대상자는 왼쪽 신발을 벗어 그대로 던졌다. 신발은 부비트랩을 직격했으며,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검은 벽에는 그을음만 남았고, 대상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었다. ⠀ 4. 한도경 (28, 무직) 제시어: 고인 답: 거인 생존 기간: 34분 사인: 두개골 분쇄 비고: 천장에 머리가 닿을 만큼 큰 인간형의 거인이 나타났다. 거인은 대상자의 지시에 따라 약 9분 동안 검은 벽을 주먹으로 쳤고, 그동안 벽에 지금까지 중 가장 큰 흠집이 일곱 개 생겼다. 거인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방 전체가 흔들렸다. 14분째, 휘두른 팔에 대상자가 직격되었다. 거인은 그 뒤로 6분을 더 벽을 치다가 천천히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거인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 5. 윤재호 (35, 직업군인) 제시어: 대표 답: 대포 생존 기간: 3분 사인: 두부 손상 비고: 대상자는 7분간 거인의 사체를 살피더니, 대포를 검은 벽 정면 12미터 거리에 놓고 조준에 2분 30초를 들였다. 발사된 포탄은 검은 벽에 맞고 같은 속도로 튕겨 나왔다. 포탄은 흰 벽을 몇 차례 오가며 튕기다가, 발사 지점으로 돌아와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여파로 망치와 도끼가 훼손되었고, 대상자의 숨이 멎었다. ⠀ 6. 강태웅 (34, 작가) 제시어: 지인 답: 지진 생존 기간: 4일 사인: 탈수 비고: 단어가 적힌 직후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흔들림은 약 7분간 이어졌다. 흰 벽 여러 곳이 갈라졌고, 쓰러진 거인의 몸이 30센티가량 밀려났다. 검은 벽은 흔들리지 않았다. 대상자는 하루 동안 검은 벽을 두드리다가, 이틑날부터는 거인의 부패한 사체를 찔러보는 것 외에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간헐적으로 펜을 들어 종이에 무언가를 빼곡히 써내려갔다. 나흘째, 대상자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대상자가 빼곡히 무언가를 작성한 종이는, 다음 대상자가 입장하기 직전에 초기화되어 사라졌다. ⠀ 7. 한지우 (40, 전업주부) 제시어: 식수 답: 익수 생존 기간: 9분 사인: 익사 비고: 대상자는 종이에 '석수'를 적고 12초를 기다렸다. 아무 일도 없자 '적수'를 적고 다시 기다렸다.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 남은 시간 동안 대상자는 다른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9분 40초경 '익수'를 적었다. 5초 만에 천장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고, 물은 빠지지 않았다. 대상자는 2분가량 떠 있다가 가라앉았다. ⠀ [ 정상적인 진행 환경을 위해, 밀실에서 물과 거인의 사체를 제거했습니다. ] ⠀ 8. 김세람 (38, 국어 강사) 제시어: 살 답: 사례 생존 기간: 5일 사인: 탈수 비고: 10분이 되기 직전, 대상자는 고심 끝에 답을 적어넣었다. 대상자가 받은 것은 먼저 들어온 사람들의 기록이 적힌 사례집. 대상자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반복해서 읽는 데 약 2시간을 썼다. 그 후 종이에 무언가를 빼곡히 적기 시작했다. 이틑날부터 대상자는 책에서 흥미를 잃고 검은 벽의 글자를 바라보았다. 닷새째, 대상자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책은 펼쳐진 채 옆에 남았다. ⠀ 9. 백승호 (50, 철학과 교수) 제시어: 독사 답: 도사 생존 기간: 6일 사인: 탈수 비고: 방에 한 노인이 나타나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대상자는 사례집을 확인하더니,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약 40분 동안 무언가를 말했다.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대상자는 노인의 어깨를 세 번 흔들었다. 노인은 그대로였다. 이후 엿새 동안 대상자는 하루에 몇 시간씩 노인 옆에 앉아 있었다. 노인은 대상자가 움직이지 않게 된 뒤에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 10. 임도현 (52, 화물차 기사) 제시어: 정화 답: 전화 생존 기간: 4일 사인: 탈수 비고: 휴대전화 한 대가 대상자의 손에 들어왔다. 대상자는 곧바로 세 자리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은 울리지 않았고, 화면에는 통신 권역을 벗어났다는 표시가 떠 있었다. 대상자는 약 두 시간 동안 같은 번호를 반복해서 눌렀다. 그다음에는 검은 벽의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전화기를 들어 올려 천천히 좌우로 움직였다. 표시는 바뀌지 않았다. 이튿날 대상자는 전화기를 귀에 댄 채 검은 벽을 향해 한참을 말했다. 노인에게도 무어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흘째부터는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나흘째, 전화기의 화면이 꺼졌고, 그 무렵 대상자도 움직이지 않았다. ⠀ 11. 송민철 (24, 대학생) 제시어: 사고 답: 사과 생존 기간: 4일 사인: 탈수 비고: 사과 한 알이 바닥에 떨어졌다. 대상자는 사과를 네 조각으로 나눠 하루에 한 조각씩 먹었다. 사흘째 마지막 조각을 먹은 뒤 씨와 꼭지까지 씹어 삼켰다. 그 뒤로 약 다섯 시간 동안 방을 돌며 입에 댈 것을 찾았다. 노인을 바라보다가도, 다시 바닥을 한참 핥았다. 나흘째부터 움직이지 않았다. ⠀ 12. 박상우 (49, 자영업자) 제시어: 분자 답: 부자 생존 기간: 5일 사인: 탈수 비고: 오만 원권 다발이 바닥에 무더기로 쏟아졌다. 대상자는 그중 한 다발을 집어 천장을 향해 흔들었다. 그다음에는 검은 벽 앞에 돈다발을 가지런히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약 30분 간격으로 더 높이 쌓았고, 다섯 시간 만에 돈더미는 대상자의 키를 넘었다. 대상자는 돈더미 위에 올라가 천장을 스무 번 넘게 두드렸다. 천장은 열리지 않았다. 이튿날 대상자는 쌓았던 돈을 도로 헐어 바닥에 두툼하게 깔고 그 위에 누웠다.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지 않았고, 닷새째 움직임이 멎었다. ⠀ 13. 윤서진 (31, 인플루언서) 제시어: 기도 답: 지도 생존 기간: 5일 사인: 탈수 비고: 대상자는 지도를 펼쳤다. 지도에는 이 방 하나만 그려져 있었다. 검은 벽 너머에 해당하는 자리는 비어 있었다. 대상자는 지도를 검은 벽에 대고 약 10분간 맞춰 본 뒤 접었다. 이후 닷새 동안 하루에도 수십 번 지도를 접었다 펴고,  노인에게도 말을 걸기 위해 수십 번 시도하였다. 마지막 날에는 지도를 펼친 채 그 위에 엎드렸다. ⠀ 14. 서지환 (39, 변호사) 제시어: 불면 답: 불멸 생존 기간: - 사인: - 비고: 대상자는 입장한 뒤 약 5분 동안 벽 앞의 사례집을 읽고, 쌓인 도구들과 가부좌를 튼 노인을 차례로 살폈다. 그 뒤 종이를 펴 놓은 채 4분 가까이 펜을 들지 않았다. 그동안 여러 번 손가락을 폈다 접으며 무언가를 셈했다. 대상자는 받침 하나를 바꿔 '불멸'이라고 적었다. 적은 직후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벽에 이마를 세게 부딪쳤다. 찢어진 이마가 몇 초 만에 아물었다. 같은 동작을 두 번 더 했고, 세 번 다 상처가 아물었다. 대상자는 웃으며 검은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두 팔로 무릎을 안고 눈을 감았다. 사흘이 지나도 대상자는 깨어 있었다. 굶었으나 쇠약해지지 않았다. 이레째, 대상자는 일어나려 했으나 등이 검은 벽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깨와 뒤통수가 벽 안으로 조금 들어가 있었다. 대상자는 두 손으로 벽을 밀며 빠져나오려 했고, 그러는 사이 손바닥도 벽에 잠기기 시작했다. 보름째, 몸은 가슴께까지 검은 벽에 들어가 있었다. 서른 날이 지났을 때, 벽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은 얼굴과 한쪽 어깨뿐이었다. 검은 벽 반대편의 흰 벽면에 출구가 생성되었지만, 나가는 이는 없었다. 검은 벽 표면에는 사람의 안면 하나의 윤곽이 반쯤 솟아 있다. 간헐적으로 입술로 추정되는 기관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 15. 오현태 (35, 경호원) 제시어: 생수 답: 맹수 생존 기간: 5분 사인: 교상 비고: 방에 짐승이 들어섰다. 어깨높이가 사람 가슴께에 닿았다. 처음 30초 동안 짐승은 가부좌를 튼 노인의 다리를 물어뜯었다. 노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사이 대상자는 바닥에 쌓인 도구 더미에서 부러진 도끼를 집어 들었다. 검은 벽 표면에는 사람 하나의 윤곽이 솟아 있었으나, 짐승은 그쪽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상자는 소리를 질러 짐승을 검은 벽 쪽으로 몰았고, 짐승은 두 차례 벽에 부딪혔다. 벽에는 자국이 남지 않았다. 세 번째로 몰려던 순간 짐승이 돌아섰다. 대상자는 도끼로 짐승의 머리를 네 번 내리쳤다. 짐승은 멈추지 않았다. 짐승이 덮친 뒤 5분이 채 되기 전에 대상자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 16. 박노아 (29, 무직) 제시어: 악수 답: 약수 생존 기간: 24일 사인: 아사 비고: 검은 벽 아래 한쪽에서 물이 가늘게 흘러나왔다. 대상자는 흐르는 물을 받아 마셨고, 물은 멈추지 않았다. 첫 사흘 동안 대상자는 먹을 것을 찾아 방을 뒤졌으나, 쌓인 것들 중 먹을 수 있는 것은 없었으며 노인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레째부터 대상자는 물줄기 옆에 자리를 잡고 거의 떠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대상자는 가끔 검은 벽에 솟은 형상을 향해 말을 걸었고, 그럴 때마다 벽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돌아왔다. 두 사람은 며칠에 걸쳐 그렇게 주고받았다. 스무 날이 지나면서 대상자가 일어서는 횟수가 줄었다. 스무나흘째, 대상자는 물줄기 옆에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다. 물은 그 뒤로도 계속 흘렀고, 벽의 형상은 한동안 그쪽을 향해 있었다. ⠀ 17. 조상혁 (33, 소방관) 제시어: 산소부족 답: (없음) 생존 기간: 10분 사인: 처형 비고: 대상자는 종이에 '산소부속', '산소무족', '간소부족'을 차례로 적었다. 각각 적은 뒤 약 30초씩 기다렸으나 어느 것에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7분이 지났을 때 대상자는 펜을 내려놓았다. 남은 3분 동안 대상자는 쌓인 도구들과 가부좌를 튼 노인, 그리고 검은 벽에 반쯤 잠긴 사람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10분이 지나 두개골이 폭발하며 처형되었다. ⠀ 18. 남경수 (60, 약사) 제시어: 익스트림스포츠 답: (없음) 생존 기간: 10분 사인: 처형 비고: 대상자는 종이에 여러 글자를 적었다 지웠다. 약 8분 동안 그 일을 반복했고, 적은 것 중 어느 것도 단어가 되지 않았다. 남은 시간에 대상자는 검은 벽 앞에 서서, 거기 적힌 글자를 손가락으로 한 자씩 따라 그었다. 글자 옆에는 사람의 얼굴 윤곽이 벽 밖으로 조금 솟아, 대상자 쪽을 향하고 있었다. 대상자가 그 글자를 두 번 따라 그은 뒤, 10분이 지났다. 대상자의 두개골이 폭발하며 처형되었다. ⠀ 19. 김태욱 (47, 건설현장 소장) 제시어: 도요토미히데요시 답: (없음) 생존 기간: 10분 사인: 처형 비고: 대상자는 종이를 30초 만에 버리고 맨손으로 검은 벽을 긁었다. 앞사람들이 낸 흠집에 손톱을 박아 넣고 파냈다. 긁던 자리가 점점 벽에 솟은 형상의 어깨께로 옮겨 갔다. 약 6분 후 양손 손톱이 모두 빠졌다. 대상자는 손톱이 있던 자리로 계속 긁었다. 흠집도 형상도 변하지 않았다. 10분이 지났다. ⠀ 20. 정해린 (20, 재수생) 제시어: 고문 답: 교문 생존 기간: - 사인: - (탈출) 비고: 대상자는 종이에 적힌 단어를 2분가량 들여다보았다. 그 뒤 모음 하나를 바꿔 '교문'이라고 적었다. 직후, 검은 벽 한가운데에 대상자가 졸업한 고등학교 교문이 솟았다. 교문이 선 자리 바로 옆에서, 벽에 잠긴 형상이 천천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상자는 교문을 밀었다. 문은 열렸다. 대상자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 너머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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